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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홀로서기

chaspen 2013. 12. 6. 09:03

노량진역전 건너편에 복사점포를 인수 받아 개업 하였다.

비공개로 내놓은 가게를 비교적 저렴한 권리금으로 인수한 것이다

가게를 출입하는 멍청한 친구가 더 멍청한 나를 이것에 끌어 들인 것이다.

아마도 내가 자력으로 가게를 운영하지 못하면 덤핑으로 가게를 인수해서 자기가

운영 할 생각이었는가 보다

 

일반 복사가 아니다. 노량진은 각종 수험생들이 집합하는 거대한 학원가이다

복사라면 서류를 가져와서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통째로 복사하거나

인터넷에서 학원강사들이 정리해 놓은 자료들을 대량으로 복사하는 곳이다

모든 수험정보가 복사 집으로 집결된다.

그래서 수험자료를 잘 정비하고 있어야 사업을 할 수 있다

이것도 거의 준비된 것이 없다

 

학원에 입학한 학생들은 책을 분철한다 일반 책은 두꺼워서 펼치면 구석까지

잘 펼쳐지지 않아 강의를 들으면서 책에다 기록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노트형식

으로 책을 나누어 공부한다

학생들이 몰려오고 함께 작업을 하기로 한 멍청이들은 별로 아는 것이 없다

복사가 밀리로 종이가 걸리고 복사기가 잘 안돌아가고 분철은 잘 안되고

학생들은 빨리해 달라고 독촉하고...

 

복사 집을 인계해준 전주인은 모든 거래처를 다른 곳으로 빼돌리고 권리금만

받고 떠나 버렸다.

이러다간 수천만원이 날라가고 점포는 문을 닫아야 할 판이었다

서점을 함께 경영하고 있었는데 수능이 끝나서 모두 책을 반납해서 30여평을

가게가 복사기계가 있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책이 몇 권 없다

출판사에 보증금을 내고 책을 주문해야 하는데 이것 역시 수천만원이 들어간다

 

내가 어리석었다고 느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되 돌릴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더구나 그동안 다니던 직장마저 퇴직을 해서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아빠, 이러다간 아빠 죽겠다.

괜찮아, 너만 잘 된다면 난 죽어도 좋아.

 

아들은 사업경험도 없이 이런 사업을 시작한 아버지를 질타하기 시작한다

아내는 이런 지경 인지는 짐작도 못한 채

남의 돈을 빌려 사업을 하게 된 것을 후회하고 있다.

딸은 울면서 취업준비를 위해 공부하던 중 이었으나 취업공부를 포기하고

직접 사업에 뛰어 들었다.

 

두 멍청이와 딸은 복사집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수능이 끝나고 업무가 한산해지기 시작했다.

내년 1월까지는 영업이 잘 안 된다

대입이 끝나고 낙방생들이 재수를 결심하고 학원가로 꾸역꾸역 모이기 시작하는데

인근에 1000여명이 다니는 대형 재수학원이 있고 주변으로 각종 학원빌딩들이

줄줄이 서 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영업이 시작 된다.

딸은 고심 끝에 나를 끌어들인 음흥한 멍청이를 대신할 친한 친구를 데려왔다.

 

이제 아빠는 다시 취직해서 엄마를 도와드려..

알았다. 취직자리 한번 알아 볼게.

나이가 만65세가 넘어 지하철도 공짜로 타고 다니는 나이에 무슨 직장이 있을까

친구에게 어려움을 말하니 직업소개소를 소개해 준다.

학력은 고졸로 낮추고 인천에서 집수리한 경력을 넣었다

 

현장소장님으로 근무하셨군요. 어떻게 소장까지 하신 분을 제가 부릴 수

있겠습니까?.

 

낙방이다. 다시 직업소개소를 방문했다.

 

영선직을 구하는데 가 보실래요?.

가 보겠습니다.

 

두 번째 면접에서 나는 취직이 되었다. 비록 24시간 근무이지만 기술이 들어가는

직장이라서인지 경비직보다는 대우가 나은 편이다.

 

격일제로 근무하고 집에서 잠간 쉬고 딸이 경영하는 복사집으로 간다

일이 바쁘면 도와주고 바쁘지 않으면 청소라도 해 주어야 겠다.

 

아빠, 저녁만 되면 손님이 거의 오질 않아.

간판에 불이 안들어 오잖아. 내가 고쳐줄게.

 

안 돼 간판이 2층에 붙어 있어서 사다리차로 작업해야해

그럼 내가 수리비용을 줄테니까 간판에 불이 들어오도록 해봐.

 

전기기술자를 불러 점검을 해보니 간판전기제어장치가 고장이 난 것이다.

점검비만 12만원이 들었다면서 부품값이 20여만원이 추가로 들어간다고

불평이 대단하다.

 

내가 나머지 작업은 모두 해 줄 게. 이게 내가 할 일이 아닌가

 

고압선 배전판을 열고 긴장된 전기 작업을 완료했다.

재료비는 1만원정도 들었다.

밤이 되면 어두워 안보이던 간판에 불이 들어왔다

간판이 전면과 측면 두 곳이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후문 2층에 사방2미터 크기

간판이 보름달이 빛나듯 환하게 길거리를 비추고 있고 후문 1층 문설주에는

또 하나의 간판이 잘 보이는 곳에서 환하게 비추고 있었고 길바닥에는 이미

세워놓은 입간판이 서 있었다

건물주위로 5개의 간판이 빙둘러서 학원생들이 몰리는 네거리를 밝게 비춰주고

있었다. 이번 간판수리로 4개의 간판이 한꺼번에 불을 밝힌 것이다

간판불이 들어오던 날 B4칼라 복사에 코팅을 100매 주문이 들어왔다

간판 수리비가 들어 온 것이다.

 

딸은 새벽 5시에 집에 들어가기도 했고

어떤 때는 밤1시에 집에 들어가기도 하면서

수험생들을 위한 대형자료들을 프로그램화 하고 있었다.

 

아빠. 가게가 잘 되면 거기 나가지 말고 여기 와서 일해

내가 그 봉급을 줄게.

 

이제 그 멍청이들은 모두 떠나보냈다.

인근에서 젊은 사장이 왔다고 학생들이 제법 관심을 가져주는 것 같다.

 

<홀로서기> 노량진 버스정류장 건너편 <다이소>위에 간판이 위치하고

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 한일은 이런 딸을 낳은 것일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