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spen 2018. 9. 15. 17:48

진달래

 

늦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던 오후,

군인작업복 차림의 아버지가 들에서 돌아오셨다

어머니에게 무슨 말인가 하시는 듯 하였으나

갑자기 말문이 막히면서 말이 어눌해진다

어머니는 장난기가 섞인 말투라고 생각이 들어

웃다가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는 며칠 동안 누워계시다가 돌아가셨다

내 나이 10, 어머니 32

누나 15, 여동생 6, 4, 할머니 80

한 집안에 여자5, 남자 1, 10 살배기 나

홀로였다.

 

들판에 곡식은 익어서 볏단을 쌓아 두었는데

가을비는 부슬부슬 내린다

벼가 상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나는 지게를 지고 논으로 달려갔다.

비에 젖은 볏짚 두 단을 지제에 지고 오는데

너무 무겁다. 몇 발짝 오다가 돌부리에 걸려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볏단에 눌려 일어나지

못하고 땅에 엎어져 울고 있는데 이웃집 일꾼

이 발견하고 볏단을 집에까지 옮겨 주었다.

 

겨울이 닥쳐 올 텐데 땔감이 없어 큰일이다

어머니와 누님은 산에서 솔잎낙엽을 갈퀴로

긁어 나뭇단을 만들어서 시장에 내다 팔았다.

낙엽은 긁어가도 나무는 할 수 없었다.

인근 산은 대부분 오씨네 산이라 산에서 나무

를 하다가 걸리면 나무도 빼앗기고 지게도

빼앗기기 십상이다.

나는 10살짜리 조그만 지게를 지고 앞산으로 갔다

나무는 몇그루 되지 않았으나 봄이 되면 진달래가

만발하던 아름다운 앞 산 이었다

이 산은 바로 옆집 문씨네 산이었다

문씨네는 이산을 애지중지 아껴 겨우 땔감을 이

산에서 해결하곤 했다.

 

진달래는 땅을 조금만 파고 괭이로 나무를

치면 나무가 뿌리까지 잘 부러진다.

그래서 아주 편하게 나무를 할 수 있다.

특히 언덕에서 자라는 진달래는 언덕을 파내려

가면 진달래 뿌리가 흙덩어리와 엉켜서 아래로

내려와서 나무를 쉽고 많이 할 수 있다.

대낮부터 시작해서 한나절까지 한참을 열심히

진달래를 파내려 가고 있는데 옆에 누군가

서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산주인 문씨어르신이다.

이제는 혼나게 생겼다고 긴장하고 있는데

그냥 지나가 버린다.

 

앞산에서 파온 진달래는 겨울동안 쓰고도 남을

정도로 처마 밑에 쌓여만 갔다.

문씨네 산 길가에 있는 진달래는 모두 파온 것

같았다.

이듬해 봄 2월경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동네사람들이 모두 문상하러 왔는데 음식을 하느라

작년에 문씨네 산에서 해온 진달래를 땔감으로 해서

장례식을 마치게 되었다.

(내가 나무를 해 온거야)

내 속으로 의기양양하기도 했다.

그해 4월 작은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올라왔다.

남대문초등학교 4학년에 편입하였다.

그 후 종종 고향에 다녀온 사람들로부터 고향

소식이 들려 온다

문씨와 오씨가 우물을 파는 문제로 싸움이

일어났는데 문씨가 오씨네 일꾼들에게 두들겨

맞아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그 후 문씨네는 고향을 떠났다.

그 집 아들과는 친하게 놀던 사이였는데...

학교로 전근해 오신 선생님들께서는 꼭

문씨 집에서 유숙하곤 했었는데...

지금은 문씨 아들 이름도 기억이 안난다

 

....

 

불쌍하다고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

볏단까지 집으로 운반해준 이름 모를 동네 일꾼

 

자기네 산에서 아끼고 아끼던 진달래 땔감을

모두 파가도록 아무 말도 없이 내버려둔 숭고한

마음...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몰라 진달래꽃이 필 때 면

잊지 않고 문씨가문과 이름모를 일꾼에게

축복을 빌어준다.

그의 자손과 후대에 신의 사랑하심이 영원

하시길 기원하면서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