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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계를 다녀와서

chaspen 2013. 10. 27. 23:02

 

장가계를 다녀와서

 

설레는 생애 처음 외국에 나가보는 여행이었다

뒤돌아보니 7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너무 바쁘게 살아온 자신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아내는 처음 해외나들이 하는 남편에게 정성을 다해

여행준비를 잘 해주었다.

최근 갑자기 건강에 이상을 느껴 감히 중국관광을 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식구들 몰래 치료를 다방면으로 해오던 일을 아내는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말없이 수의를 준비하는 마음처럼 여행용 옷을 입혀보고 다시 메이커로

가서 교환해 오고 또 가서 다른 것을 사오기를 여러 번 하였다

혹시 건강에 이상이 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여벌옷도 여러 벌 준비해

주었다

가방을 점검하면서 언제나 즐겨 쓰던 대형카메라를 발견하고는 건강에

무리가 되니 절대로 가지고 가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집 앞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직행리무진버스편이 있는데도 출가한 딸이

차를 가지고 공항까지 태워다 주면서 여러 가지로 주의사항을 일러주기도

하였다

약속1시간 전에 도착하였는데도 대부분의 한자지도사일행이 공항에

모여 일찍부터 여행환담을 즐기고 있었다

마치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어린이처럼 모든 것이 낯 설기만한 공항에서는

내가 과연 서울에서 살아온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보이는 것 모두

신기하고 감탄만 할 뿐이었다 다행히도 하나투어 담당직원이 우리들의

가이드로 함께 여행을 가는 중 이어서 모든 진행마다 쉽게 안내를 받을 수

있어 참으로 다행한 일이기도 하였다

4시간정도 운항하는 비행기 안에서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웃음소리는

중국 장사공항에 내리는 밤1시까지 계속되었고 공항에 내리는 300여명의

승객은 모두 한국인인 듯이 보였다 공항을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보는 순간

보이는 것 모두가 갑자기 친밀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국의 간판은 영어 아니면 한글인데 여기는 모두 한자가 섞인 중국

간체자뿐인데 약간의 초서체와 행서체가 이해가 된다면 거의 알 수 있는

글자들이었다 평소 한자를 공부하면서도 나만을 위한 외로운 학문으로만

생각하고 사범과 지도사특급을 취득하였지만 다른 직종에 근무하다보니

한자를 활용할 기회를 갖지 못한 아쉬움이 조금씩 해소되기 시작했다

읽다가 이해가 안 되는 글자는 장인수교수님에게 물어보면 잘가르쳐 주신다

이건 관광이 아니라 학습여행이다

공항에는 말쑥하게 정장차림을 한 현지가이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한자지도사>라는 안내문이 리무진30인승 버스 앞에 쓰여 있었다

한국에서 한자를 학습한 팀이어서 매우 조심스럽게 안내를 하였지만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공산당에게 교육 받은 대로 전달해 주는 차가운

느낌이 들었지만 가이드는 우리나라를 조국이라고 불러 주었다

중국은 우리나라 99배가 넘는 땅을 가지고 있고 인구도 16억이나 된다고

한다 한국에 부자가 많다고 하지만 중국에는 세계적인 부자가 우리나라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다 다만 교육수준이 평준화가 안 되고 빈부격차가

우리나라보다 더 심할 뿐이라고 중국에 대한 설명을 한다

가이드는 유창한 한국어로 조상이 한국인이며 자기는 한국인 3세라고 하면서

한국의 경제발전으로

중국에 있는 많은 동포들이 경제적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감사의 말도 잊지 않았다 버스로 4시간을 가야 우리일행이 묵을 호텔에

도착한다고 한다 새벽부터 낮 시간 동안 계속 달리는 버스차창으로 내다보는

중국의 산하는 별로 높은 산은 보이지 않고 낮은 산에 작은 관목으로

뒤덮힌 산들만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곳은 중국 서쪽이다 옛날 백제 근초고왕이 말을 타고 이곳을 지배했던

곳이라고 생각이 되니 금방이라도 백제군이 튀어나와 우리를 반길 것처럼

보였다

아침식사를 하고 또 두 시간을 달려야 한다.

또 다시 낮은 구릉 같은 산이 이어진다

이번에는 18156월 벨기에 워털루에서 웰링턴장군에게 폐했던 나폴레옹

군대가 지나온 구릉처럼 다르게 느껴졌다

버스 안에는 한국관광버스와 비교되는 노래방시설이 전혀 없다

현지가이드가 겁주듯이 안내하는 마이크뿐이다

중국어에 능통한 오문옥선생께서 가이드와 운전기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팁을 주자 상황이 조금씩 바뀌었다

체력이 다할 때까지 반주가 없어도 자막이 없어도 차안에서 가무는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버스로 4시간 달리고 또 두 시간을 달려야 장가계에 도착한다고 한다

서울에서 평양거리를 달려 백두산을 구경하고 금강산을 관광하는 거리 쯤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도착한 호텔은 우리나라 무궁화5개정도 되는 최고급호텔이다

적은 경비로 이런 배려를 받는다는 것이 매우 고마울 뿐이다

9시에 도착해서 아침6시에 기상하고 식사하고 짐 꾸리고 또 출발이다

2시간이상 버스로 달려야 19일 묵을 호텔에 도착한다

드디어 장가계로 간다고 하는데 장가계는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우고 한신이 토사구팽(兎死狗烹)당한 후 장량(張良)이 속세를 벗어나

신선술을 익히며 여생을 보낸 곳이 이곳 장가계가 되었다고 하나

후대에 이르러 산세가 험하여 외부세계와 문화교류가 단절되어

글자가 없는 산적들의 소굴로 변모 되었다고 한다

최근 10여년에 걸쳐 한국사람들이 장가계의 절경을 보고 많이 찾아와서

관광시설을 중국정부가 대대적인 지원을 하게 되어 오늘날과 같은

경이로운 관광을 즐길 수 있도록 하였으나 지역이 너무 방대하고

산세가 험해서 관광을 위한 공사를 하는데 3000여명의 희생자가

생겼다는 현지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평생 한번은 꼭 가봐야 한다는 곳이기도 하여

과거 중국에서 생활하던 오문옥선생과 그 친구 분도 함께 관광에

동참하게 된 것이었다

일행 중에는 이미 장가계관광을 다녀오신 분들도 몇 분이나 되었다

장가계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리무진버스가 산봉우리 밑에 도달

하였고 일행은 케블카를 타고 1500메타가 넘는 산봉우리를 넘어

올라갔다 현기증이 심하게 났고 앞이 어지럽기 시작했다

구름속으로 가는 케블카에서 바라보는 산은 마치 학을 타고

산을 날라 올라가는 신선이 된 것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험한 산에 철주를 세웠을까

어떻게 케블카 철선을 올렸을까

산이 내려오는 것 같은 느낌은 심장조차 멈추게 하고야 말았다

고속으로 35분정도 올라간다고 하는데 아직도 정상이 아니다

중국 중국인들 대국기질이 보이기 시작 한다

우리가 경북고속도로를 완공하고 경제를 발전하기 시작하였다면

중국은 장가계관광지를 개발하여 경제를 발전해 가는 모습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1500메타 산등성이 칼날 같은 절벽위에 길을 놓아 사람들이 왕래

했다는 잔도는 새들도 보이지 않는 구름에 쌓여 일 년 중 8개월이상

비나 눈이 온다는 곳이기에 언제나 우비가 준비되어야 산에 오를 수

있는 곳이다 잔도의 끝에는 다른 산으로 연결되는 다리가 있는데

밑은 1500미터가 되는 바닥이 안 보이는 절벽이다

다리 바닥 틈으로 아래가 보이면 현기증이 난다 평소 고소공포증이 있는

지라 눈을 감고 발들 더듬어 계곡다리를 건너왔다

이제는 좀 나아지려나 하는 순간

스키장에서나 보았던 리프트를 안전밸트도 매지 않은 채

산을 내려가야만 했다 장가계는 한번 온 길은 절대로 되돌아 갈수 없는

게 특징이다 중국 땅에서 혼자 남느니 차라리 내려가다가 죽으리라

4층빌딩에서 바닥을 내려다 보지 못하는 나에게 1500메타산을

2인승 리트프를 맨몸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각오는 이곳이 중국이기에

억지로 용기를 내어 눈을 감고 리프트에 올랐다

발이 들리고 몸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날개 없이 추락하는 새가 되었다

구름 속을 지나가는데 쇠파이프를 잡은 손이 겨울날씨처럼 시리기 시작했다

거북이 등을 타고 용궁을 내려가는 심청이가 이러했을까

아마도 대형카메라를 가지고 왔더라면 틀림없이 여기에서 떨어뜨렸을게다

아내의 말을 듣기를 잘한 것 같다

15여분을 내려오고 또 다시 케블카로 내려온다 이젠 산위에 있음이

두렵지 않다 아직 단풍이 시작되기 전이지만 케블카 아래 산은 참으로

표현하기 힘든 절경이다

드디어 장량(張良)의 신선술을 익혀 4신선들과 14선녀들이 되어 산을 내려

왔다

리무진버스를 타고 시내로 내려오는 긴 시간동안에도 내 몸은 버스천정에

떠 있었다.

 

전신안마소에서 몸의 피로를 풀고 저녁만찬을 마친 후 호텔로 돌아왔다

내일 새벽6시에 기상해서 식사하고 7시에 다시 짐을 싸고 다른 호텔로

이동한다

10시이후에 도착한 호텔에서는 편한히 쉴 수도 없다

장교수방에 모여 그날 체력이 다 할 때까지 남은 회포를 더 풀어야만 했다

무심코 방문한 박선녀님이 이신선님의 신비로운 뒷모습을 보고 활홀경에

빠진 그 기쁨을 함께 나누고 밤이 새도록 웃고 또 웃었다

 

 

어디로 가는지 어느 곳을 관광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냥 현지가이드 지시대로 부지런히 따라 갈 뿐이다

간식거리로 가져온 컵라면은 끓인 물을 구할 수 없어 먹어보지도

못했다

해발 1300미터에 위치한 천문동은 산꼭대기에 있는 동굴로 1999년 세계

특기비행대가 천문동을 지나가 전 세계적으로 그 경관이 알려지기 시작

한 것이라고 한다 굽이굽이 뱀이 똬리 튼 산길을 따라 천문동아래 도착한다

산마다 절경이요 뱀 길을 끝도 없이 산을 오르고 또 오른다

안개가 일어 앞산이 안보이고 비가 내려 하산을 재촉하지만 우비를 입고

천문동 입구에 도착한 버스에서 내려 다시 가파른 999계단을 걸어서 천문동

에 도착한다 연로하신 회장님께서 무리를 해서 천문동을 오르고 내려오신

듯하다 내일은 아바타의 촬영지인 원가계로 이동할 예정인데 건강이 염려

된다 다닌 곳이 너무 많아 기억이 안 나지만 사진들을 보며 추억을 떠

올려 본다

가이드는 관광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려고 새벽부터 서둘기 시작한다

이곳 관광은 편히 쉬기 위한 휴양지가 아닌 등반코스를 둘러보는 것이다

피곤하다고 느낄 틈도 없이 이어지는 주변 절경은 가는 곳마다 감탄 또

감탄이다 관광을 마치고 나면 반드시 쇼핑센터로 일행을 가이드가 안내

하면서 상품설명을 잘 한다 이 기간 동안 들여야 할 쇼핑센터가 여러 곳이

있다고 하면서 상부의 지시가 있어 빠질 수 없다고 양해를 구한다

절대로 아무물건도 사오지 말아요.” 신신당부하는 아내의 말을 새기고 또

새겨보지만 진주목거리 앞에서는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그리고 손녀 머리핀 며느리 머리장식핀 등이 전부였다

대나무섬유로 만든 행주 수건 몇 개가 전부인데도 제법 많은 금액이 지출

되었다

 

진주목거리나 몇 개 더 사오지 그랬어요

역시 여자는 보석에 약한것인가 보다

손녀 머리핀이 너무 환상적이네요

이것도 좀 더 사오지 그랬어요

 

관광을 마치고 나니 일행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견딜 수 없었다

이 아름다운 광경들을 모두 카메라에 담았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궁리하던 중 작업을 시도해본 전자앨범이 생각이 들었다

원본을 찾아 기능을 찾아보고 시도해 보기 시작했다

과거 편집했던 경험을 되살려 스마트폰으로 받아본 파일들을 올려

보았다 모두 좋은 편이었으나 내가 찍은 스마트폰은 사진화소가 최소로

조절되어 있어서 화질이 아주 불량해서 몹시 안타까웠다

사업준비로 분주한 일과가 지나고 조용한 밤에 편집 작업에 몰두 하였다

기본자료를 만들었으나 이 정도로는 장가계 일행들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고 생각되어 컴퓨터선생을 찾아가서 마무리과정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음악도 몇 곡 넣고 화면도 잘 넘어가고 컴퓨터에서 잘

부팅되도록 만들었다

이제 카메라를 두고 온 짐을 벗은 것 같다

오히려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것이 더 편집하기에 접합함을 이번에

알게 된 것이다 전자앨범과 함께 우리의 추억이 담김 나의 생각을

몇 자 적어 본다

 

내 생애의 몇 년을 장가계여행을 통해서 빌려온 것 같다

 

 

짧은 지면으로 그 동안의 많은 일들을 모두 수록 할 수 없어

이만 줄이기로 한다.